가을!
어제도 낮 시간엔 더웠다. 비만 내리던 이번 여름이.... 늦더위로 기승을 부려 보려하지만 가을의 발걸음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테해란로 길에 부는 바람 속에는 이미 가을의 냄새가 짓게 묻어난다.
곧, 말라버릴 플라타나스의 넓적한 잎들이 테해란로의 길을 어지럽히면서 환경미화원들의 손길을 바쁘게 할 것이다. 테해란로 길을 바쁘게 오가는 직장인들의 모습도 바뀔 것이다. 마치 흡혈귀들처럼 해 빛을 피해 건물사이 어두운 그늘 구석에서 담배피던 젊은 직장인들이 당당하게 해 빛 앞으로 나올 거고, 젊은 남자들의 힐끈 거리는 눈길을 즐기듯 아슬아슬한 젊은 여인들의 패션은 더욱 매력적인 가을의 패션으로 바뀔 것이다. 곧, 길거리 장사꾼 아저씨들의 상품 메뉴도 변할 것이다. 즉석에서 구워주는 땅콩장사, 오뎅국물로 유혹하는 포장마차, 뜨거워 혀를 돌리면서 먹어야 할 붕어빵 장사.....
짓밟힌 은행나무 열매 냄새가 우리 코를 찌르겠지만 난 은행나무의 화려한 잎새가 기다려진다. 불에 타는 듯 요염을 자랑하는 단풍나무가 보고 싶다. 한강 둔치길, 가을바람에 흔들리면서 열병식을 하듯 서있는 갈대숲이 보고 싶다. 익어가는 볍씨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고개 숙인 황금빛 논이 보고 싶다. 잎 떨어진 감나무에 매달린 마지막 붉은 감도 보고 싶다.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조용히 흘러가는 한강의 모습도 기다려진다. 이젠 나도 한 여름 동안 입던 반바지도 벗어 버리고 가을의 옷으로 갈아입어야겠다. 박인환씨의 시귀가 생각이 난다.
목마와 숙녀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