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의 현판을 한글로 할 것이야 아니면 漢文으로 할 것이야, 이것이 문제로다.
역사적으로 우리 국민들은 한문을 사용하여 왔다. 어려운 한문으로 우리 국민들은 글 깨우치기가 어려웠다. 이를 통감하신 세종대왕께서, 1446년 배우기 쉬운 한글을 발명하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566년 전이다. 배우기 쉬운 한글로 우리국민들의 문맹 율은 거의 “0” 라는 사실이 오늘 우리나라의 모습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한문은 우리사회 생활에 깊게 관여하고 있다. 호적과 같은 공문서류엔 여전히 한문을 사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소리문자인 한글의 뜻을 확인하기 위해 한문은 여전히 부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한문이 갖고 있는 멋은 우리 삶의 예술적 눈을 더욱 즐겁게 해 주는 것도 사실이다.
며칠 전 신문에 광화문의 현판을 한글로? 아니면 한문으로? 하면서 전문가들 사이에 논쟁이 뜨겁다 한다. 하지만 곧, 결정이 날것이다. 아래 글을 읽어본 후, 우리 KCI 학회 회원들은 어떤 생각인지, 댓글에 각자의 의견을 올려보세요. 정답은 없는 겁니다.
광화문은 임금님께서 정사를 보시는 경복궁을 지으신 후, 1399년 그 둘레에 궁성을 쌓을 때 세운 문이다. 매일 아침, 그 시대 정계의 거물들이 입궁하던 문이며, 원래의 이름은 사정문(四政門)이다. 세종대왕이 즉위한 후 1425년 광화문으로 그 이름을 바꾸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865년에 재건하였다. 1927년 일제 총독부에 의해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建春門) 북쪽으로 옮겨졌다. 광화문은 6.25 전쟁 때 화마를 당했으며, 1968년 박정희 대통령께서 다시 재건하시면서 원래의 위치로 되돌려 놓으셨다. 그 때, 박정희 대통령께선 세종대왕의 뜻을 기리는 의미로 현판을 한글로 직접 쓰신 것이다. 그 후, 1995년 김영삼 대통령 시절, 경복궁을 모습을 가로막는 일제시대의 상징적인 건물, 중앙청을 철거하였고, 광화문을 박정희 시대에 잘못 선정된 위치 ( 약 3.5도 차이 )를 수정하여 원 위치로 되돌려 놓는 공사를 통해 지난 2010년 8월 15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 된 것이다. 그 현판은 현재 한문으로 되어 있다.
광화문은 서울을 대표하는 역사와 문화의 얼굴이며, 우리나라를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반듯이 방문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젠 완연한 봄이다. 회원님들, 언제 시간 날 때, 여친과 함께 나들이 삼아 광화문을 찾아가 우리의 역사를 잠시 되돌아보는 여유 즐겨보세요 그리고 광화문? 아니면 光化門? 생각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