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수 박사님과의 재회 ! 작성자 : 이주강     작성일 : 2013-10-13

KCI 학회 회원님들이라면 오춘수 박사님의 이름을 들어 본적이 있을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카이로프랙터가 되신 분이시다. 개인적으로는 나에게 꿈을 주셨고 나의 삶을 바꾸어 놓으신 분이시다. 건강과 삶에 대한 카이로프랙틱 철학을 내게 심어주셨고 카이로프랙터로서의 삶을 살게 인도해 주신 분이시다. 난 오늘, 20여년 만에 그 분을 종로에서 다시 만나 뵈었다.

 

 

팔머를 졸업하고 켈리포니아 면허를 받은 나는, 1979년 오 박사님의 뜻을 받들어 Korean Chiropractic Association in California, 미주 한인카이로프랙틱 협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이다. 오춘수, 칼빈 손, 데이빗 정, 김광은, 그리고 내가 초대 모임의 멤버였다. 가장 연로했던 오 박사님이 회장을 맡고, 가장 어렸던 나는 회장 비서 임무를 맡았다.

 

우린 매 달 한번 씩, 오 박사님의 병원에서 모임을 갖고 카이로프랙틱 임상 철학을 논의했다. 이미 많은 임상경험을 쌓으셨던 오 박사님의 카이로프랙틱 임상 경험담들을 경청했다. 뿐만 아니다. 난 오 박사님의 뜻을 따라 로스엔젤레스에 살고 있는 젊은 교포 대학생들에게 카이로프랙틱을 전했고 오 박사님께서 나를 카이로프랙틱으로 인도 했던 것처럼 그들의 삶을 이끌었다. 그리고 35년 후, 여러분들과의 인연도 이어지게 된 것이다. 난 오늘 그 분을 또 다시 종로에서 만나 뵌 것이다.

 

현재 그는 87세다. 지금은 은퇴하시고 부인과 함께 로스엔젤레스 남쪽 해변가에 있는 라구나힐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타운에서 살고 계신다. 오 박사님은 기골이 장대하신 분이시다. 그의 얼굴엔 항상 밝은 미소가 있었다. 환자를 진료하실 때 마다 치료는 내가 하지만 낫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라고 환자를 위로하고 기도하시는 분이다. 육이오 전행이 끝난 직후, 1953, 25세의 젊은 나이로 유학차 미국으로 가신 후, 이제 고향이 그리워 일시 귀국한 노인이시다. 몸은 많이 수척해 보였지만 그의 카이로프랙틱의 정열은 여전히 그의 밝은 눈빛과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확인할 수 있었다.

 

언제 미국으로 돌아가시냐고 물었다. 안타깝게도 열흘정도 만 머무신다고 하신다. 이번 113KCI 학술회에 참석하여 오래 전 내게 주었던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전해주었으면 했는데...... 그 분이 유일하게 기억하는 종로 한일관에서 불고기와 냉면을 들면서 우리는 3시간을 함께 했다.

 

한주영  2013-10-14
세분 밝은 미소가 닮으신 듯 하네요. 시대를 뛰어넘는 만남이란게 바로 이런게 아니겠습니까! I love chiropractic, me too!!
이중현  2013-10-14
역사적인 날이네요!! 30년쯤후에 교수님과 저희들의 만남도 이렇게 이어지겠죠?!!~^^
김종건  2013-10-14
오박사님을 .. 멋지십니다.. 교수님 건강히 오래 사세요.
변영준  2013-10-14
저도 같이 뵙고 싶은는데 강의관계로 참석 못해서 아쉽네요
박태진  2013-10-14
너무 멋지십니다 ..더이상 말이 필요 없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