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30일이 되면 클리닉의 그 달 매출을 본다. 총 수입 그래프는 여전히 상향곡선이다. 총 보험청구액, 현찰환자 총 수입액, Orthotic, back belt, Thomas collar, 손목 보호대 등등, 구별된 항목으로 매출액이 나누어져 쉽게 볼 수 있게 정리된 장부가 내 손에 있다. 오늘은 클리닉 멤버들에게 인심을 써야겠다. 오늘 저녁 약속 잡지 마! 회식 계획을 미리 알린다. 얄밉도록 사랑하는 내 영악한 직원들이 모를 리 없다. 그 날 저녁은 그들이 정한다. 저녁이 끝난 후 우린 주로 ‘ 정주고 내가 우네!’를 불러 인기가 높았던 고등학교 선배, 한웅 가수가 있는 “ 타이거 바” 아니면 70-80가수 “ 이장희”가 운영하던 장미의 숲으로 간다. 그 땐, 미국에 잠시 와있던 조영남이도 같이 있었다. 우리 팀이 들어서면 그들은 마치 삐끼처럼 반갑게 맞는다. 앉자마자 마이크가 나에게로 온다. 노래하라면 절대 사양하지 않는 내가 아닌가? 안 시키면 오히려 섭섭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제부터 제일 카이로프랙틱 클리닉 멤버들과 주말 파티가 시작되는 것이다. 1980년도 들어서면서 로스엔젤레스의 교포사회의 주소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다음이 LA 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교포사회도 변했다.
매일 환자를 봐야하는 임상생활은.....특히 카이로프랙 임상가는 쉽지 않은 전문직이다. 몸과 마음이 피곤하다.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래도 어져스트먼트 받고 난 후, 완쾌된 환자들을 보면서 위안 삼는다. 수술을 앞두었던 환자들이 쾌유되어 주는 인사말은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준다. 치료 잘 받은 환자들 소개로 찾아오는 환자를 볼 땐 공짜 아메리카노 한잔 맛과 같다. 의료보고서 잘 써줘서 보상 많이 받았다는 환자 선물도 재미있다. 그래도 스트레스다. 우린 진단부터 치료까지 홀로 해야 하는 카이로프랙터가 아닌가? 진통제, 근육이완제, 소염제 스테로이드를 복용시키고 안 좋아지면 정형외과나 신경외과로 의뢰하거나 수술하고 안 좋아지면 정신적인 문제로 밀어붙이거나 또는 어쩔 수 없지 않느냐? 하고 끝맺는 메디칼 임상가들이 아니다. 우린 무조건 치료해 놔야 한다는 강박적 카이로프랙틱 의무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One adjustment, one miracle !
난 스쿠버 다이빙을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바다 속 광경을 직접보고 싶었다. 켈리포니아 바다는 스쿠버 다이빙의 천국이다. 겨울이 없다는 로스엔젤레스도 바닷물은 차다. 1/4인치 고무옷을 입고 물속으로 뛰어든다. 때론 파도를 뚫고 해변서부터 헤쳐 나간다. 난 신들린 듯이 켈리포니아 바닷가를 뒤지고 다녔다. 바다 속, 또 다른 세계를 살았다. 때론 칠흑 같이 어두워 어디가 위고 아래인지 알 수도 없는 검은 바다 속을 뒤지고 다녔다. 물개가 내 다리 사이로 통과하고 벽처럼 다가오는 고래의 눈과도 맞추었다. 나보다 큰 상어와 씨름도 했다. 사장님 책상만큼이나 큰 광어도 잡았다. 세숫대야만 한 전복을 잡아왔을 때 엄마는 입을 다무시지 못했다. 우리 집 냉장고엔 꽁꽁 얼어있는 랍스터와 전복으로 채워져 있었다. 끊임없이 순환되는 바다 속 모래폭포를 30미터 바다 속에서 넋을 잃은 듯 봤다. 파도가 들이치면서 바위 덩어리 구멍 사이로 솟구치는 파도의 나팔 소리를 멕시코의 ” 라부파도라“에서 들었다. 그리고 수많은 밤을 바닷가에서 보냈다. 이것이 제일 카이로프랙틱 크리닉 스트레스를 이기는 방법 이었다 내게는........ What is yours?
Chiropractically y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