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10월 18일 서울, 세계카이로프랙틱 컨퍼런스 작성자 : 이주강     작성일 : 2015-02-04

facebook_-1015505170

 

1984, 미국으로 떠난 후 처음으로 서울을 찾아 온 해다. 15년만이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떠났던 내가 미국 대한카이로프랙틱 학회 ( Korean Chiropractic Association in USA ) 대표로서 나온 것이다. 뿐만 아니고 국내에 DC가 없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회의장에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DC이기도 했다. 15년 만에 서울에 온 것이다.

 

비행기가 현해탄을 넘어 한국 상공을 날 때부터 난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아이처럼 창으로부터 눈을 땔 수 없었다. 나무하나 없던 민둥산들이 울창한 나무숲으로 변한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굽이 흐르고 있는 한강 주위에 말로만 들었던 강남 아파트들이 밀집된 모습이 놀랍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배타고 건너와 캠핑 왔던 배추밭, 거름 냄새나던 그 시골 한강변이었는데...... 새롭다. 초라했던 김포 국제공항이 화려하게 변했다. 공항을 빠져 나오며 서울로 들어오는 길......... 옛 기억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거리는 자동차로 넘쳐났고, 걷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깨끗하고 힘차 보였다. 모든 것이 예전과는 달랐다. 가난에 쪄들어 희망을 잃었던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었고, 풍요로움 속에 활기찬 모습이었다. 조선호텔로 향하는 서울 중심부는 마치 뉴욕거리를 연상시키는 듯 했다. 다시는 볼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했던 고등학교 친구들은 멋진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15년 만에 세상이 변했다 !!!!

 

세계카이로프랙틱 콘퍼런스는 1018일 조선호텔에서 개최되었다. 그 당시 국내에 DC 하나 없는 현실이었는데........ 어떻게 세계카이로프랙틱 콘퍼런스가 서울에서 개최되었을 가? 회원들은 궁급했을 것이다. 자랑스럽게도 한국인 서정화 박사님의 노력 때문이었다. Subluxation의 임상적 실체를 증명한 서정화 박사님 논문을 높이 평가한 세계카이로프랙틱협회, ICA의 결정이었다. 그 날의 주인공은 세계 모든 카이로프랙터의 자긍심을 한층 더 높여준 한국인 학자를 위한 파티였다. 서정화 박사님은 DC가 아니시다. 생체역학을 전공하신 콜로라도 주립대학의 교수님이시다. 그는 카이로프랙틱 서블럭세이션 이론의 임상적 실체를 밝히신 여러 학자 중 한 분이시다.

 

그 분에 대한 일화가 기억난다. 그의 논문을 통해 카이로프랙틱에 대한 국민의식이 높아질 것을 두려워한 미국의사협회에서 서정화 박사님을 회유했다는 예기다. 카이로프랙틱 서블럭세이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미국 의학학술지에는 등제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는 위협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서 박사님은 세계카이로프랙틱협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세계 생체역학 학계에 담담하게 발표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ICA 컨퍼런스가 84년 서울에서 개최된 개기가 된 것이다. 그 날 ICA 컨퍼런스는 학회회장이시고 라이프 카이로프랙틱 대학의 설립 총장이시었던, BJ Palmer 시대 이후 당대에 가장 존경받는 카이로프랙틱의 리더이신 Dr. Sid William께서 개최연설을 맡으셨다. 그리고 국내 의료계와 인사들과 보건관련 정치인들도 다수 참석하였던 국내 최초의 공식적인 카이로프랙틱 이벤트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황당한 사건이 벌어지면서 그날의 컨퍼런스는 웃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돌변한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나라로부터 참석한 많은 카이로프랙터들은 실망스러운 한국의 현실을 보고 돌아갔다. 사건인 즉, 컨퍼런스가 한창 진행되는 과정 중 갑자기 뒤에서 유리가 깨지 소란이 들렸다. 상상도 할 수 없는 황당한 사건이었다. 때거지로 몰려온 시각장애인들의 행패였다 !!!!! 자신들의 밥그릇을 강탈하려 왔냐고 폭력적 행동으로 데모를 벌인 것이다. 소란은 곧 진정되었지만 그들 눈에 한국은 아직 갈 길이 멀게만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컨퍼런스는 국내에 카이로프랙틱의 씨앗이 내려진 계기가 되었다. Dr. Sid William 회장님은 카이로프랙틱을 전 세계적으로 전파하기 위한 “ Life Around World ” 프로그램을 한국에 시작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카이로프랙틱이 법제화되지 않고 있는 국가에 두 사람 DC를 선출하여 카이로프랙틱틱 전도사로서 파견하는 사업이다. 그리고 대구에 있는 상무단 의무부서에 두 명의 미국 DC 상주시켜 “ Life Around World " 프로그램을 한국에 론칭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94년도 까지 진행되었다. 나를 청와대로 초청한 청와대 의무진 Dr. 석홍 선생도 그 때 카이로프랙틱을 접하게 되었던 국내 최초의 군의관이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황당하기 짝이 없지만, 난 에너지 넘치는 35세의 청년이었다. 컨퍼런스를 마치자마자 난 기다렸던 듯이 15년간 잊었던 친구들과의 우정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서울의 밤에 취해있었다. 어떻게 서울의 밤에 취해 있었냐구? 그건 연구실에서 예기하자


chiropractically yours, 

 


안성현  2015-02-04
oh my god~~!! unbelievable. Dr. Sid William이 정말 한국에 왔었었나요? 교수님은 얼마나 많은 카이로프랙터를 보고 만나신건가요? 부럽기도하고 한편으로 제가 교수님을 알고 있다는게 자랑스럽습니다.
이중현  2015-02-05
교수님 life around world 프로그램의 결과는 어떻게 됐나요? 94년까지면 10년정도 프로그램이 진행 됐겠네요.. 교수님의 옛날 얘기 들을때마다 너무 재미 있습니다^^ 다음 스토리도 기대하겠습니다~~
최인수  2015-02-05
교수님이야말로 대한민국 카이로프랙틱의 역사이시자, 아버지이십니다. 교수님께 카이로프랙틱을 배운 것이 참 행운이란 생각이 다시한번 듭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카이로프랙틱이 법제화되어 올바른 카이로프랙틱으로 보다나은 의료제도화가 정착되기를 소망하며 멀리서 늘 응원하겠습니다.^^
이주강  2015-02-07
Life Around World 프로그램은 94년도에 끝났어. 마지막 한분은 한국여자와 결혼해서 미국으로 들어갔고 또 한 분은 간염 B형으로 귀국했어. 그리고 국내에 이미 DC들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LAW 프로그램은 더 이상 필요없게 됬지. 그리고 나두 들어왔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