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인간 작성자 : 이주강     작성일 : 2015-03-01



 

내게 일주일이란 시간은 마치 하루처럼 지나갔다. 월요일 아침 여행용 가방을 끌고 오피스텔 문을 나서면 토요일이 돼서야 돌아오기 때문이다. 오피스텔 경비 아저씨도 뭘 하고 다니는지 의아해 하셨지만 가끔 들리는 회사직원을 통해서 교수님이시라고 말을 들었던 모양이다. 언제부턴가 경비 아저씨들도 교수님하고 불러주신다.

 

시간이 나는 주말이면 난 주로 서울구경에 나섰다. 하얀 운동화와 반바지 그리고 검은 티셔츠.... 생수병을 들고 귀에는 워크맨 이어폰을 끼고 서울구경을 나선다. 그 때만해도 더운 여름 햇빛 아래에서도 선글래스를 끼는 사람들이 별 없었다. 검은 선글래스를 끼고 다 큰 어른이 하얀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모습을 언짢게 보는 듯 쳐다보는 분들도 적지 않았다. 난 주로 한남대교를 걸어 건넌 후 남산으로 향한다. 남산은 내 어릴 적부터 친숙한 곳이다. 약수동에 살 때, 매주 일요일이면 아버지께서 남산 약수물을 떠오라는 명을 우리 형제들에게 주시기 때문이다. 조폭 같은 형들의 불꽃같은 눈길을 피할 수 없어 약수용 대형 주전자는 내 손에 쥐어진다. 그 시절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그 남산을 찾아 가는 것이다. 그것 뿐 만 아니다. 가난했던 시절 남산은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다. 가끔 재수좋은 날이면 숲속을 찾아 들어간 젊은 연인들의 적극적인 애정행각을 훔쳐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지금도 남산 약수는 흐르고 있지만 마시지 말라는 경고가 가끔 붙는다. 남산을 가로질러 대한극장 옆으로 빠진다 그리고 명동을 가로질러 종로로 향했다. 종로는 휘문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내가 놀던 동네다. 지금은 현대종합상사 본사건물이 있었던 곳이 휘문 고등학교 자리다. 국가 보존물인 작은 첨성대가 지금도 서있다. 그 첨성대를 내려다 볼 수 있던 곳이 내가 공부하던 교실이 있었다. 지금도 그 곳을 지날 때면 45년 전 기억이 새로워진다. 창경궁 돌담을 따라 혜화동 대학거리로 들어선다. 대학생들의 거리공연을 한참 보다보면 하루가 기울어지는 저녁시간이다.

 

서서히 홀로생활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가족을 뒤에 두고 기러기 아빠가 된 나, 가족들의 불평도 많았다. 특히 어머님의 염려는 집사람의 불평을 더욱 악화시키기만 했다. 한데, 웬일인가! 난 홀로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었고, 외면할 수 없었던 새 생활과의 갈등은 카이로프랙틱 전도사로서의 열정으로 녹아내려 내 맘속엔 오히려 평화감이 높게 침전되고 있었다. 자유로움, 타오르는 열정, 새롭게 시작된 제 2의 삶....... 그리고 난 egoistic - self centered, 자기중심적인 이기적 인간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애써 생각해 본다. 석가모니는 진리를 깨닫고 전파하기 위해 가족을 떠났고, 도산 안창호 선생은 대한독립 운동을 위해 가족을 떠났고, 안현수는 자신의 기량을 펼치기 위해 가족을 떠났다고. 난 역시 이기적인 인간이 모양이다.

한주영  2015-03-02
교수님글을 읽고 있으면 혼자하는 여행도 너무 멋질것 같은 생각이드네요. ^^
안성현  2015-03-03
가족에게 잘하면서 카이로프랙틱 잘하기는 정말 어려운 숙제인것 같습니다.
이주강  2015-03-03
성현아, 어렵긴 뭐가 어려워? 넌 안떠나면 되자나. 어딜 가려구?
이중현  2015-03-03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꺼 같습니다 저라면 상상도 못할 ..^^;; 그 시대에도 남산에서 그런 추억(?)이 있었군요 ㅎㅎ 교수님의 이기심으로 저희 제자들은 카이로프랙틱을 알게 됐으니 사모님께는 죄송하지만 ... 감사합니다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