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째글:김치냄새 작성자 : 이주강     작성일 : 2010-06-26
켈리포니아 주 면허 시험을 통과한 후, 그 동안 assistant 노릇만 하였던 나는 정식으로 첮 번째 직장을 갖게 되었다. 물론 주급은 거의 3배 정도로 높아졌고. 그리 크지 않은 작은 규모의 종합병원에서 카이로프랙틱 부서를 맞게 되었다. 병원 이름은 " Miracle Miles ". 원장은 이스라엘 출신의 DC 였고 내과, 재활과, 정형외과 그리고 카이로프랙틱과로 구성된 병원이였다. Los Angeles 한국타운에서 멀지 않은 유태인 마을에 위치한 병원이다.

원장, Dr. Finger는 유태인 답게 병원 경영에, 특히 병원 매출에 매우 예민했으며 각 과의 과장들을 달달복는 스타일의 경영자였다. 나와 같은 전공이였기에 나에 대한 눈길은 어느 누구보다 따뜻한 분이셨다. 하지만 신출나기지만 젊고 패기만만한 나는 한국 교포 타운이 가까운 것을 잘 이용하여 한국 환자들을 많이 유치하게 되었다. 매 달 늘어나기만 하는 내 환자에 따라 매출도 놀랍게 증가되었다. 난 슬슬 원장에게 그 사실을 계속 보고하면서 은근히 월급을 올려달라고 압력을 가했다.

79년 10월 26일, 아침 일찍 출근하여 회진하는 중 Dr. Finger가 나를 찾더니 당신 나라의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이 오늘 아침 사실당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하는게아니가 !!!!! 너무 놀랐다. 가슴이 뛰고 환자들은 안중에도 없고.....뉴스에 귀를 기우렸다. 그리고 점심 시간이 오자마자 친구들과 마치 약속이나 한듯이 친구들과 자주가던 한국 식당으로 뛰어갔다. 몇 시간 사이 뉴스를 통해 전해진 소식들을 서로 나누면서 점심을 함께 했다.

언제부터인가 난 김치를 멀리했다. 혼자 살면서 없어서 먹지 못했지만 Palmer 대학 재학 중 인턴때부터 생겼던 습관이었다. 아침은 "시리얼" 점심은 "샌드위치"로 때우는 생활이였다. 진료 시 미국 환자에게 혹 실례가 될까 해서. 그런데 그 날은 전혀 생각없이 한국타운에서 자동차 딜러하는 친구들과 내가 좋아하던 굴젖에다 김치찌개 생각없이 만긱했다. 점심 후 난 병원으로 돌아가 항상하던 일 처럼 오후 환자를 늦은 시간까지 돌보았다. ASRP, T6 anterior, R. PI ilum........ 치료 중 Chiropractor와 환자 사이는 MD와 환자 사이에 신체적인 거리가 훨씬 가깝다는 사실 알지? 거기에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사살당했다는 상세한 설명을 침튀겨 가면서 설명했는데........

그 다음 날도 난 예전 처럼 일찍 출근하였다. 그리고 내 책상엔 하얀 봉투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Wow............... !!!! 드디어 원장께서 내 노력을 이해하시고 보너스를 주시는거구나 !!!!!!!!!!!!!!!!!!!!! 편지 봉투를 확 뜯은 후 내 눈에 들어온 첫 글자는 보너스를 줄 때 흔히 쓸 수 있는 말 Congratualtion !!! 이 아니였다. " Dr. Lee, many of our patients did not appreciate your breath yesterday. Do something about it " 라고 하는 간결한 문장이였다. 그야 말로 " 오 마이 갇 " 순간적으로 부끄러워 어찌할바를 몰랐다. 그 날은 정말 긴 하루였다. 보너스는 물건너갔고 .....

아.......... 이것이 백인과 한국인 사이에 메꿀 수 없는 거리구나. 난 그 순간 처음으로 내 병원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딱 일년 후 1980년 12월 교포가 많이 살고 있는 한국타운 중심에 클리닉을 세웠다, " 이주강 Chiropractic ".
 
(2009년 작성된 글이며 관리자에 의해 재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