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이나에게 전한말 작성자 : 이주강     작성일 : 2010-06-26
얼마 전 둘째 아들이 옛 사진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와, 사진을 정리하고 있었다. 지난 30 년간 미국생활의 모습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들놈이 필요하다는 사진을 찾다가, 난 옛 생각에 젖어 하루를 보냈다. 마침 라디오를 통해 Air Supply의 음악이 연속으로 흘러나오면서 나는 옛 생각과 옛 음악에 취해 연구실에 가는 것도 뒤로한 채 하루를 그냥 보냈던 것이다.우주에 있다는 worm hole을 통해 30년 전의 삶으로 시간여행을 한 것이다.

때때로 수업 중 학회 회원들이 “ 교수님 어떻게 서울에 나오시게 되었나요? ” 하는 질문을 받고, 항상 “ 때가 되면 한번 예기해 줄게 ” 하면서 미루어 왔는데........ 지금 옛 생각에 젖어 그 때의 뒤안길을 되돌아 보려한다.

그 시절 난, 내 가슴 깊숙이 숨어 있던 방랑벽을 이기지 못했던 나약한 남편이었고 책임감 없는 40대 가장이었다. 또한 Chiropractic에 대한 나의 작은 도전과 의무감으로 폭발직전의 화산이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사건으로 25년간 미국의 삶을 떠나 본적인 서울로 돌아오게 된 분출로가 되었다. 그것은 1994년 켈리포니아에서 발생한 그 유명한 Northridge earthquake, 지진이었다. 지진 강도는 6.9였지만 7.0이 넘었다는 말도 떠돌았다. 새벽 4시쯤, 평생 들어보지 못했던 위협적인 소리와 함께 온 세상이 흔들렸다. 11살, 12살의 두 아들은 잠에서 깨어 안방으로 뛰어 들어왔고 우리 4가족은 이불 속에서 서로를 붙잡고 놓을 줄 몰랐다. 지진의 진동은 몇 십 초정도 계속되었지만 우리의 느낌은 영겁의 시간이었다. 동네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면서 나 역시 집을 뛰어 나왔다. 옆집 백인 아저씨들은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이 총을 들고 나와 있었다. 그리고 나한테 “ 넌 왜 총이 없니 ” 하며 약탈행위가 있을 줄 모르니 총을 준비하라고 한다. 평화롭고 질서적인 세상이 순간적으로 바뀐 것이다.

지진의 진앙지는 놀랍게도 내 병원 건물이 있는 대규모의 쇼핑센터였다. 집에서 약 30분 정도 떨어진 ( 40 km ) 곳에 있던 내 병원을 중심으로 모든 건물들은 처참하게 붕괴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시내로 들어오는 고가도로는 붕괴되어 새벽에 달리던 차들은 그 대로 곤두박질쳤고, 도시 땅속으로 이어진 개스라인들은 불기둥을 이루었고, 교통신호는 모두 마비되어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아.............. 지진이 진료 시간인 아침 9시에 발생했다면 !!!!!!!!!!!!!!!!!!!! 난 여러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는 영원히 없었을 것이다.

그 때, 난 3명의 백인 DC와 함께 병원을 경영하였다. 의사결정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다시 건축하자는 말이었다. 그리고 재건축 될 때까지는 병원 앞 주차장에 텐트를 쳐서 봉사도 하고 진료를 하자는 유태인다운 계획이었다. 우린 두 손과 테이블 만 있으면 어디서든지 치료할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내 맘속은 다른 생각으로 치닫고 있었다. 수많은 인명을 빼앗아간 지진이었지만, 내 귀에는 새 삶의 방향을 지시하는 또 다른 소리 만 들렸을 뿐이었다. “ Dr. Lee, it is about time for you go back to Seoul and do what you want to do "

문제는 집사람을 설득시키는 것이 관건이었다. 하지만 내 맘은 이미 서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난, 연세대학교 재활의학과 특강 후 자연스럽게 이어진 여러 대학특강을 통해 카이로프랙틱에 대한 갈망을 볼 수 있었다. 또한 무질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카이로프랙틱 교육들을 보면서 LACC 대학의 총장이신 Dr. Phillip의 맘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집사람과 함께 저녁을 같이 한 총장님은 그 자리에서 내 활동에 대한 정식 허가를 인정하여 주었다. 이렇게 나의 지난 15년간의 서울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낙옆귀근이라고 했던가? 떨어지는 낙옆은 뿌리로 돌아간다는....... 서울에서 홀로 생활할 때 혼자 속리산 산행을 갔었다. 내려오는 산길 구석에서 자리 잡고 앉았던 늙은 할머니 점쟁이가 생각난다. 내 눈을 빤히 쳐다보더니 하시는 말씀 “ 물건너왔나? ”. 네 했더니, 잘왔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다니겠구만........ 하시던 말씀이 기억난다. 모르지, 내 속에 방랑기가 또 언제 솟아날지. 이번엔 지진이 아닌 바람소리에?
 
(2010년 2월 작성된 글이며 관리자에 의해 재등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