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시절의 장마 기억..! 작성자 : 김종건     작성일 : 2013-07-15

날이 계속 어둡고 끝도 없이 내리는 비..

이런 비를 우리는 장마라고 부른다.

이런 장마 어떤이들은 우울해 할지도.

또 어떤이들은 기분이 좋을수도 있겠지만.

우린 환자들과 가까운 직업을 가졌으니 .. 아마도 아파 하시는 분들이

더 많고 더 걱정일 것이다.

물론... 나 역시도 비가 오면 아프다 특히 목이.. 디스크가 있어서 ㅎㅎ

비는 내게 특별하다..

왜냐면 나자신을 좀 돌아볼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내 어린시절은 그랬다.

5킬로나 .. 걸리는 거리를 걸어 다녔다.

작은 아이가 걸어다니기에는 먼 거리다.

국민학교때 숙제를 안가져 가면 다시 가는길이 너무 멀어

맞은적도 참 많다. 한번은 동생이 유치원 때인가 ?

숙제를 안가져간걸 아신 어머니가 동생에게 50원을 주며

초코파이 사먹고 형아 숙제좀 가져다 주라는걸

.. 동생이 숙제 가지고 학교까지 왔는데 .. 가는길

초코파이 사먹으라고 준 돈으로 산 초코파이를 내가 빼앗아 다 먹어

운.. 기억이 난다.

지금생각하니 참 못된 놈이었다.

아련한 기억.. 비가 그렇게 몹시 내리던날.. 우산을 안가져간날은

비를 그냥 맞고 왔다 책이며 공책등.. 다 젖어.. 돌아오곤 했다.

책가방으로 머리를 가리고.. 그렇게 오랜시간을 달려서 집에오면

어머니는 못가서 미안하다.. 머리를 수건으로 닦아주시면서.. 안아주시던 기억

농부의 아내로 사는건 그랬을 것이다.. 감자전과 김치 부침개..

그 냄새는 아직도 내 기억에서 사라지질 않는다.

난 그랬다 중간고사는 모내기 하냐고.. ... 그리고 .. 다시 기말고사때는 벼를 추수 하냐고.. 그리고 틈틈히 소에게 여물 써서 주고.. 장작구하러 다니고 그랬다.

내 어린날은 그렇게 농부의 아들로 성장했다.

그리고는..

다시 장마ㅇ..... 머리가 커서는.. 대학다니면서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충당하고..

생활비는 직접 벌어야 했다.. .. 한번은 장마기간에.. 강원도 산속에 들어가서

아무것도 없는 산속에서 소를 키우는 우사를 만들러 간적이 있다.

일주일만 아르바이트 하기로 간거였는데.. 잘곳이라곤 막사가 전부고 ..

물도 화장실도 .. 전혀 없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마시고.. 감자를 캐서 먹어가며

그렇게 1주일을 설사병으로 .. 고생하며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려 내려오는데..

장마에 불어난 물에.. 길도 집도.. 모두 떠내려 가고 아무것도 없고.. 내 눈앞에는

젖소가 떠내려 가는 무서운 홍수가 보였다.

... 몇일을 다시 그곳에서 일을 더 했던 기억이 난다.. 이걸 젠장이라 표현해야 할까?


다시 장마.. 대학 시절.. 방학마다 알바를 해야 하는 나는 ... 막노동판에 다녔다..

사실 비를 맞으며 일하는건 좀 짜증날꺼라 생각했지만 .. 헐.. 그게 아니다.

시원하다.. 비를 온통 완전 다 젖도록 맞으면서 몇시간 막걸리에 힘으로 일하는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신기한 체험을 할수 있는 기회다.

아직도 .. 옥수수 막걸리와 감자전의 .. 기억이 떠오른다..

이 알바비로 난 차를 구입했고.. 중고차지만.. 대학시절 난 차를 가지고 다닌 오너였다.

ㅎㅎ.. 물론 차는.. 오래된 프라이드 였고 .. 기름값때문에 주말... 2일동안 물리치료 알바를 했다.. 그래서 .. 시험볼때 너무 힘들었다 알바는 해야 하고 .. 시험공부는 해야하고 ..

장학금 못타면 학교 못다니고.. 젠장ㅇ......


장마.. 사실은 내 몸뚱아리는 안 아플수가 없다.

그만큼 썼으니 ..

그리곤 지금 너무 힘을 안쓰고 사나보다..

그걸 내 살들이 .. 증명하고 있지 않나 싶다.


나는 다시... 새로운 인생을 위해 일어날것이다..

장마가 나의 기억을 깨우기 시작했다..

더 아끼고 더.. 열심히 살고.. 더 즐기는..

숨이 헐떡거리게 살아온 내 .. 과거는 ..

나를 다시.. 뛰게 한다.. 장마 .. 아마도 나는

그시절... 비를 맞으며 젖은 내 삶을 탈출하고 싶었나 보다..

참고로.. 농부이신 우리 아버지는 땅이 화성에 엄청 많으시다.

그런데.. 난 그거 나라에 팔라고 한다..

연금전환 시키면 노후를 보장 받을수 있으니 말이다..ㅎㅎ

그래서 언제나 우리 아버지가 나보다 부자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난 노후가 보장돼지 않았으니 ... 아직 죽도록 일해야지..


한주영  2013-07-15
선생님, 정말 정말 고생많이 하셨네요. ㅜ.ㅜ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옛말, 이제는 늙어서도 고생하니 굳이 젊어서는 사서까지는 하고 싶지 않아서 "젊어서 고생은 피할수 있으면 피하라" 라고 고치고 싶네요. ㅋㅋㅋ
김종건  2013-07-16
ㅎㅎ 출신성분을 바꿀수가 없는거니.. 감사하며 사는게.. 건강한 부모님 밑에서 건강한 생각 가지고 자라날수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윤현우  2013-07-16
직원동료분들에게 치료를 간간히 받으셔야 할것같아요. nn
김종건  2013-07-16
맞아요.. 그러고 살고 있죠... 현우샘..
이주강  2013-07-17
Oh My God !!! what a story of your early life !!! just loved to read it. 앞으로 국내 최고의 카이로프랙틱 임상가 되는 일만 남았다. 종건아, 파이팅.